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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

20화

강형민 2023. 5. 29. 21:44

20화. 

 

라티아나는 벽 하나를 꽉 채우고 있는 엄청난 크기의 수족관에 손을 넣고 서서, 물고기들을 이리 몰고 저리 몰고 있었다.

 

[먹을 거 가지고 장난치시는 거 아닙니다.]

 

푸른 눈에 금발을 길게 늘어뜨린 애니말라가 해초 말린 간식을 쟁반에 담아오며 말했다. 

 

<애니>

 

그가 원래 목소리를 내자 애니말라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인간 말로 하십시오. 괜히 민원 들어옵니다.]

 

[여기 방음 잘 된다며?]

 

라티아나가 짜증을 내며 하는 말에 애니말라가 담담하게 대꾸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지 않습니까. 라티아나님 소리는 워낙 멀리까지도 전해지니.]

 

[쳇.]

 

[왜 계속 기분이 안 좋으십니까? 요즘 공부도, 일도 안 하시고 연애만 하시면서.]

 

그러자 그가 발끈하며 외쳤다.

 

[나 지금 육지인에 대해 공부하고 있는 거야. 몰라?]

 

[굳이 한국까지 와서요?]

 

[맨날 같은 동네 인간들만 보면 뭘해? 멀리까지도 나와봐야지. 그리고 바다 속에 한국 물건도 있는 거 몰라?]

 

[뭐 말씀하시는 겁니까?]

 

[배 조타 부분에 쓰여있던 글자가 한국어잖아.]

 

[그렇습니까?]

 

[공부 좀 해. 나 감시할 생각만 하지 말고.]

 

[아아.]

 

정곡을 찔렸지만, 애니말라는 무감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루트나 심해, 인간들이 말하는 버뮤다 지역엔 많은 배들과 비행기들이 잠겨 있다. 그것들만 있을 땐 그래도 마뮤인들이 사는 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쓰레기였다. 인간들이 쓰고 버린 쓰레기. 

 

그것들이 바다를 더럽히고, 박테리아를 죽이고, 물과 공기 순환이 안 되게 만들었다. 

 

너무 많은 해양 생물들이 죽고, 원래 번식을 잘 안 하는 마뮤인들도 그 수가 점점 줄고 있다. 그리고 그나마도 두 무리로 나뉘어져 갈등을 벌이고 있는 상태다.

 

해일을 일으켜 바다를 더럽히는 인간들을 다 죽여버리자는 강경파와 인간들의 세상에 들어가 그들로 하여금 같이 바다를 지키게 하자는 온건파였다. 

 

라티아나의 아버지는 온건파의 수장이었다. 그는 지속적으로 인간 세상에 마뮤인들을 파견해서 그들의 문화를 배우게 하고 전문가를 양성시켜 바다를 지킬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게 하였다. 

 

최초의 해양 연구소의 설립자도 그가 파견한 마뮤인이었다. 

 

성인식을 치른 마뮤인들은 의무적으로 육지로 나와 인간의 문화를 배우고 습성을 배워 그들로 하여금 자연에 관심을 가지게끔 유도했다. 

 

라티아나도 성인식을 치르고 인간 세상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바뀐 해류로 인해 있는 줄도 몰랐던 작은 나라 한국까지 흘러오게 되었다. 

 

마뮤인들이 사는 심해는 원래 춥기 때문에 얼어죽을 염려는 없었지만, 정신을 잃은 탓에 몸이 말라 죽을 뻔했는데, 주인아가 살렸다. 

 

그러나 그가 바닷가에서 발견되었고, 발가락이 붙어 있었던 것 등의 사실을 알고 있으면 안 되었다. 

 

자기들과 다른 것들만 보면 무조건 겁먹고 죽이려 드는 상어같은 육지인들 틈에서 마뮤인들의 정체는 철저히 숨겨져야 했다. 

 

마뮤인들은 마음만 먹으면 입맞춤으로 상대방의 기억을 잃게 만들 수 있었다. 그런 능력이 있는 줄도 몰랐는데, 인간과 접촉하면서 파악한 능력이었다. 

 

자기들의 타액에 무슨 물질이 그런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중이나 아직까진 마땅히 밝혀진 게 없었다.  

 

또 마뮤인들은 물속에서 초음파를 통해 대화를 나누는데, 이 초음파를 알아듣는 인간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마뮤인들은 이런 자들을 ‘통역자’라고 불렀다. 

 

이런 통역자를 만나는 건 정말 이만저만 행운이 아니었다. 그런데 라티아나를 구해준 주인아는 뜻밖에 통역자의 능력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마뮤인들은 하루 이상 물에 몸을 담그지 못하면 말라 죽을 수도 있는데, 라티아나는 출신 때문인지 며칠이나 물 속에 몸을 담그지 못했는데도 살아남았다. 

 

관리자들은 라티아나가 바다의 여신 ‘테아’의 보호를 받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테아가 도왔는지, 아니면 그저 운이 좋았는지는 몰라도 어쨌든 라티아나는 위기 속에서도 정체도 들키지 않고 생명도 보존했다.  

 

그래서 그런가, 주인아를 떠나 마뮤인들이 많이 사는 키프러스로 가서 대학도 들어갔지만, 주인아를 잊을 수 없었다. 

 

어떻게 살고 있을까. 나를 보면 기억할까. 

 

원래는 그곳에서 대학과 대학원을 마치고 해양 연구소로 들어가 해양생물 보호 활동을 할 계획이었는데, 아버지에게 더 다양한 세상을 접하고 싶다고 하고 라티아나는 덮어놓고 한국으로 왔다. 

 

혹시라도 자기를 기억할까 싶어 머리도 한국인처럼 까맣게 염색했는데, 역시나 주인아는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다양한 세상을 접하겠다는 건 핑계고, 여자 때문에 온 걸 수행원으로 따라온 애니말라에게 딱 들키고 말았지만, 감사하게도 그녀는 아버지에게 보고하지 않았다. 

 

인간들 표현대로 애니말라가 줄을 잘 선다고 생각하며, 라티아나는 그녀에게 마뮤로 돌아갈 것을 더이상 종용하지 않았다. 

 

[애니]

 

물고기들을 몰던 손을 꺼내어 털며 라티아나가 심각한 표정으로 애니말라를 보았다. 

 

[네.]

 

[예전에 좋아하던 사람을 나중에 안 좋아할 수도 있나?]

 

[아, 이제 그 여자에게 관심이 없어지셨습니까? 다행이네요.]

 

[아니, 나 말고. 주인아가 좋아하던 사람이 있어. 수컷.]

 

그러자 애니말라가 잠깐 말이 없더니 곧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뭡니까? 지금 양다리 걸치는 여자 만나시는 겁니까?]

 

[예전에 좋아했었다던데? 그러면 지금은 아니라는 뜻 아냐?]

 

[예전에 좋아했다고 본인이 본인 입으로 말했습니까?]

 

[어.]

 

라티아나가 궁금해하는 것과는 달리 애니말라가 다른 질문을 던지자, 그가 멍청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애니말라는 주군의 얼굴을 보며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그럼 그 분은 라티아나님께 관심이 없는 거 아닙니까?]

 

[왜?]

 

라티아나가 신경질적으로 눈썹을 찡그렸으나, 그녀는 그를 긁기로 작정한 것처럼 단호하게 말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내가 좋아하던 남자가 있다고 고백하는 여자는 없습니다.]

 

[네가 어떻게 알아?]

 

[인간들은 그렇습니다. 특히 한국처럼 일부 일처인 나라는 더더욱.]

 

애니말라의 말을 듣고 라티아나는 손끝으로 이마를 문지르며 중얼거렸다. 

 

[인간들은 참 불편하겠어. 비늘도 꼬리지느러미도 없으니 어필할 게 없잖아. 엉덩이라도 흔들어야 하나.]

 

마뮤인들은 아름다운 색으로 수놓아져 있는 비늘을 세우거나, 화려한 꼬리 지느러미를 흔들며 구애를 했다.

그러니 맹숭맹숭한 다리를 가지고 있는 육지인들은 마뮤인들에 비해 어필할 게 없으니, 그 역시 주인아에게 내세울 게 없다는 게 그의 논리였다.

 

라티아나가 아름다운 비늘과 꼬리지느러미를 가진 물고기들로 가득한 수족관을 보며 한숨을 쉬자, 애니말라가 침착하게 말했다. 

 

[그들은 얼굴, 몸, 돈, 학벌, 집안, 말발, 이런 것들로 어필합니다.]

 

[나는 어때? 어필될 것 같애?]

 

[인간들 기준으로 봤을 때 얼굴과 몸은 일단 합격입니다. 돈도 많으시고.]

 

[그런데 그 인간 수컷도…… 피부가 시커먼 게 키가 크더라구.]

 

라티아나가 턱을 괴며 중얼거렸다. 마뮤인들은 심해에서 사는 탓에 햇빛을 보는 날이 많지 않아 선천적으로 피부가 새하얬다. 

 

늘 수압을 견디고 있으니 근육도 발달하고 힘도 육지인들보다 좋았으나, 피부 색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육지인들의 다양한 피부색을 은근히 부러워하기도 했다. 

 

라티아나의 말에 애니말라가 약간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아, 그 사람을 보셨습니까? 주인아 씨가 소개해줬습니까?]

 

[소개는 아니고, 그 수컷이 주인아한테 밥 사준다고 하더라구.]

 

[호오. 그럼 그 남자도 주인아 씨를 좋아하는 거 아닙니까?]

 

[밥 사준다고 하면 좋아하는 거야?]

 

[인간들은 싫어하는 사람을 위해 돈을 쓰지 않습니다. 물론 유익을 위해서는 그럴 수 있지만, 대학생이 뭐 그런 유익을 따질 게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좋아하는 거지요.]

 

애니말라의 말에 라티아나는 말린 해초를 질겅질겅 씹으며 고민에 잠겼다. 그러나 애니말라는 주인아에게 좋아하는 수컷이 있다는 말을 듣고 내심 안심하는 표정이었다.  

 

라티아나의 아버지인 온건파 수장 메가피아스는 육지인 사이에서 라티아나를 낳았다고 했다. 그가 온건파가 된 것도 라티아나 때문이었다.  

 

따라서 절반은 육지인의 피를 가진 라티아나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육지에 올라오자마자 육지인에게 빠질 줄은 몰랐다. 물론 그녀가 그의 생명을 구하긴 했지만. 특이하게 통역자의 능력도 있고. 

 

통역자들은 마뮤인에게도 퍽 도움이 되었다. 문제는 그자들이 자꾸 배신을 해서라는 게 문제지. 

 

마뮤인을 인어라고 지칭하며 만든 초기 영화들 대부분이 이 통역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였다.

이렇게 마뮤인들에 대해 아는 육지인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기억을 지우는 것도 일이었다. 전담반이 생길 정도로.  

 

강경파들은 그런 자들은 아예 수장을 시켜서 죽여버리자고 주장했지만, 그건 안 될 말이었다.

강경파 마뮤인 중 한 명이 그랬다가 일이 커진 적도 있었다. 국가 정보 요원들까지 동원되어 범인을 찾으려 한 통에 하마터면 마뮤인들의 정체가 드러날 뻔 했다. 

 

물론 그 일로 강경파의 숨이 조금 죽은 건 다행이긴 했다. 이런 일들로 온건파를 지지하는 마뮤인들이 많아지면서, 다들 말은 안 해도 후일 수장이 죽으면 라티아나가 마뮤인들과 육지인들의 다리가 되어주길 바랬다. 

 

라티아나의 출신에 육지 피가 섞여 있으니 조금 다르지 않을까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같은 온건파인 애니마라가 보기에 라티아나는 아직 수장이 되기엔 감정적이고 자기 밖에 몰랐다. 지금도 해양생물 보호 사업보다 육지 암컷을 찾아 한국에 와 있지 않은가.  

 

솔직히, 강경파 수장이 다음 수장으로 지지하는 이카루드가 더 리더십 있어 보였다. 

 

그러나 강경파의 방법은 애니말라도 반대이니 그저 수장이 시키는 대로 라티아나를 옆에서 돌보는 것이었다. 

 

[얼굴과 몸은 어필했으니, 밥을 더 사줘야겠군. 돈으로 어필해야겠어.]

 

주군이 주먹을 불끈 쥐며 결심하는 걸 보고 애니말라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그럼, 육지인 음식도 드셔야죠. 물고기만 드실 게 아니라.]

 

[내가 요즘 얼마나 육지인들 음식을 열심히 먹는데. 날 거 안 먹잖아.]

 

[물고기 말고 밥도 드시고……]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라티아나가 해초 조각을 부셔서 입에 넣고 과자처럼 오도독 씹으며 웅얼거렸다. 

 

[오케이, 이제 밥도 먹는다.]

 

[토하지 마시고.]

 

[안 토해. 다 삼킨다.]

 

마뮤인들은 바닷물과 해양 생물을 함께 섭취하기 때문에 물이 과도하게 들어간 경우 자연스럽게 먹었던 것을 토하는 습성이 있었다. 이런 토사물은 작은 물고기들에게 좋은 먹이가 되었다. 

 

그러나 육지인들이 보기엔 이런 행동이 역겨운 행동임을 안 다음부터 육지에서 살 때는 음식을 토해내지 않는 연습을 해야 했다. 

 

라티아나 역시 주인아가 준 육지인의 음식을 처음 먹었을 때 토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애니말라의 이야기를 들으니 더 열심히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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