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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

17화

강형민 2023. 5. 19. 01:05

17화.

 

장혜림 교수는 수업에 집중을 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학생들이 집중을 못하기 때문이었다. 

 

처음엔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 조용히 하라고 하자 조용해졌다가, 나중엔 어디선가 또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도 그럴 것이 창문으로 조각가가 일부러 저렇게 깎으려고 해도 못 깎겠다 싶을 정도로 선이 유려한 남자가 대놓고 강의실 안으로 들여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도대체 뭐니?"

 

"누구 찾아왔나 봐."

 

학생들이 수군거리는 소리에 인아는 고개를 푹 파묻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 커다란 회색 동공이 누구의 것인지 단번에 알아봤으니까. 

 

장혜림은 결국 수업 분위기를 위해서는 지금 자기 수업을 듣고 있는 학생들을 조용히 시킬 것이 아니라, 밖에서 있는 학생을 쫓아내야 함을 알았다.  

 

그녀가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강의실 앞문을 벌컥 열자,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미친 길이감의 남자가 긴 다리로 모델처럼 저벅저벅 강의실 안으로 들어왔다. 

 

"이, 이것 봐, 학생!"

 

장혜림이 황당한 표정으로 소리쳤으나, 그 커다란 남학생은 좁은 책상들 사이를 이리저리 비집고 들어가더니 뒷자리에 턱하고 앉았다. 그리고 마치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뻔뻔한 얼굴로 앞을 보는 그에게 장 교수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것 봐요, 학생! 우리 과 학생인가?"

 

그러자 그가 말간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지금 수업 중인데 이렇게 중간에 들어오면 어떡해? 아까는 수업에 방해되게 계속 안을 들여다보질 않나!"

 

"아, 미안합니다."

 

그가 벌떡 일어나 허리를 90도로 숙이자 장 교수는 당황해서 말을 잃었다가 다시 벌게진 얼굴로 말했다. 

 

"당장 나가요!"

 

"왜요?"

 

"왜긴 왜야! 우리 과도 아니라며! 청강을 할 거면 미리 들어와 있던가! 수업 중간에 이게 뭐하는 짓이야!"

 

그러자 그가 옆 자리에서 고개를 책상에 처박고 있는 여학생을 바라보며 물었다.

 

"나가야 돼?"

 

그의 행동에 장 교수가 이번엔 인아를 보며 외쳤다. 

 

"뭐야. 주인아 남자 친구였어?"

 

남자에게 시선을 쏫아붓고 있던 동기들의 눈이 이번엔 다 주인아에게로 향했다. 그저 공부와 알바만 하지 생전 남친이라고는 사귈 것 같지 않은 그녀가 남친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남친이 저렇게 잘생긴 외국인이라니. 역시 늦바람이 무섭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러나 교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인아가 고개를 번쩍 들며 외쳤다. 

 

"남자 친구 아닙니다!"

 

"근데 왜 그렇게 주인아랑 같이 못 있어서 안달이지, 그 친구는? 지금 그 친구 때문에 수업 못 듣는 친구가 몇 명이야, 몇 명? 데이트는 밖에서 해야지, 이렇게 티나게 강의실에서, 그것도 수업 시간에 해야겠어?"

 

그녀의 말이 틀린 건 하나도 없었다. 누가 봐도 지금 그는 인아의 남자 친구 같이 굴고 있으니까. 

 

교수가 피를 토할 것처럼 분노해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인아만 보고 있는 것도 그렇고, 분위기와 상관없이 얼굴에 여유로운 미소가 한가득인 것도 그랬다. 

 

더이상 이 자리에서 왈가왈부 해봤자 수업만 점점 더 방해할 거라는 생각에 인아가 책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꾸벅 숙여 보였다. 

 

"죄송합니다."

 

그녀가 부스럭거리며 강의실 뒤로 가자 라티아나 역시 부지런히 그녀 뒤를 따라갔다. 

 

두 사람이 강의실을 나오고 나서도 한동안 강의실 안의 웅성거림은 사라지지 않았다. 장 교수의 호통 소리도. 

 

복도로 나와 비상구 쪽으로 부지런히 걸어가던 그녀는 계단 앞에 서자마자 몸을 홱 돌려 라티아나를 노려보았다. 

 

"미쳤어요! 수업 시간이 그러면 어떡해요!"

 

그러자 라티아나가 피곤한 얼굴로 대답했다.  

 

"너 찾느라 힘들었어. 여기 방이 왜 이렇게 많아?"

 

"나를 왜 찾았는데요?"

 

"보고 싶으니까."

 

무구하기 짝이 없는 얼굴과 대답은 가슴을 설레게 하기보다는 이 놈이 선수구나 하는 생각을 먼저 하게 만들었다. 이것도 재주라면 재주였기 때문에.

 

"내가 왜 보고 싶은데요?"

 

"보고 싶은데 이유가 있어? 너도 어제 나 보고 싶어서 체육관 왔던 거잖아."

 

이번엔 정말 가슴이 두근했다. 찾아간 건 맞는데, 보고 싶어서 찾아간 건가? 솔직히 그가 궁금하긴 했다. 그러나 체육관 안에 들어가기도 전에 야외 공연장에서 그를 만났으니, 충분히 발뺌할 수 있었다. 

 

"나, 체육관 가려던 거 아니었어요. 후문으로 나가려고 간 거예요."

 

"체육과 학생들 말고는 아무도 거기로 안 다니던데. 지하철 역도 멀고 버스 정류장도 멀어서."

 

맞는 말이었다. 그러나 인아는 고집스럽게 말했다.  

 

"그냥 캠퍼스 걷고 싶어서 간 거거든요? 체육관 찾아간 거 아니고?"

 

"그래. 그렇다고 하고. 이제 뭐 할거야?"

 

"바로 또 수업 있어요."

 

"지금 나왔잖아."

 

"그건 전공 수업이고, 교양 수업 또 있어요."

 

"공부가 재밌어? 수업 왜 이렇게 많이 들어?"

 

"원래 이렇게 들어야 하거든요? 태은 씨는 수업 없어요?"

 

"몰라. 시간표 못 외워."

 

"헐!"

 

이제 보니 유학생이 아니라 관광객이었나보다. 수영 선수라더니 아니었나?

 

"나 또 수업 들어가야 하니까 할 말 있으면 지금 해요."

 

인아가 팔짱을 끼며 도도하게 말하자 그가 창 밖을 내다보며 말했다.  

 

"밥 먹자. 아침을 못 먹었더니 배고파."

 

"식당 가서 먹어요. 11시부터 문 열어요."

 

"메뉴에 생선이 없어."

 

"응? 태은 씨는 생선만 먹어요? 어느 나라에서 그렇게 생선만 주구장창 먹는데요? 우리 나라에 왔으면 우리 나라 음식도 먹고 그래야지."

 

"너네 음식 먹느라고 다 구운 것만 먹잖아."

 

"구운 거? 그럼 태은 씨는 생선 구워서 안 먹어요?"

 

"그걸 왜 구워? 그냥 먹으면 되지. 근데 너네는 다 불에 구워서 먹더라. 그럼 뼈도 단단해지고 맛이 없어져."

 

그럼 주로 회를 먹는다는 말인가? 회 비싼데. 하긴. 그때 음식값 척척 계산하는 거 보니 돈이 많아 보이기는 했다. 

 

그래도 삼시 세끼 어떻게 회만 먹나. 다른 것도 먹어야지.

 

“횟집 가고 싶으면 혼자 가요. 나 바빠요. 아니, 그리고.”

 

인아가 당돌한 표정으로 그를 보며 물었다. 

 

“태은 씨 나 이제 두 번째 보는 거 아니예요? 근데 나한테 왜 이래요?”

 

“내가 뭘 어쨌는데?"

 

“아니, 강의실에도 막 찾아오고!"

 

"아까 말했잖아. 보고 싶어서 왔다고.”

 

그와 대화를 나누다보니 머리가 약간 이상해지는 것 같았다. 어제처럼 말리지 않으려면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그런데 정신을 차리려고 애쓰는 그녀와는 달리 그는 잘생긴 얼굴로 계속해서 그녀의 혼을 빼놓았다. 발음은 불분명하지만, 듣기 좋은 목소리도.

 

"그러니까, 수업 끝나고 같이 가자.”

 

마치 초등학생처럼 들이대는 그를 보며 인아는 잠시 말을 잃었다. 

 

이거…… 또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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