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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
23화
강형민
2023. 6. 5. 15:31
23화.
인터넷으로 알아본 생선집은 사진으로 봤을 때보다 한결 허름해 보였다. 평소 같았으면 사진에 속았다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이런 허름한 집이 맛집이 많으니 일단 먹어보자 식으로 생각했을 테지만, 오늘 주인아는 식당이 허름한 게 차라리 다행이다 싶었다.
식당 못지않게 자기 옷차림도 허름하기 짝이 없었으니.
라티아나가 입으라고 준 트레이닝 복은 예전처럼 친구 옷이 아니라, 정말 자기 옷인지 팔다리가 장난 아니게 길었다.
몇 번을 걷어 입은 통에 마치 주먹왕 왈프에 나오는 캐릭터처럼 종아리와 팔이 두툼해져 누가 봐도 우스운 꼴이었으나, 이 눈치 없는 남자는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마자 생선집에 가자고 졸라댔다.
인아는 먼저 사겠다고 하고선 옷차림이 이러니 못 가겠다고 하기도 그래서 그나마 이목을 덜 끌기 위해 택시까지 타고 가게 앞에서 내렸다.
정말 맛집인지 가게 안에는 저녁을 먹기 위해 온 손님들로 버글거렸으나, 아무도 라티아나와 인아에게 신경쓰는 사람은 없었다.
구석에 작은 테이블에 앉은 두 사람은 몰려오는 시장기에 주문을 하고 나서도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런데, 수영장 바닥에서 대체 뭐하고 있었던 거예요? 숨 참는 연습했어요?”
한참만에 인아가 먼저 입을 열자 라티아나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졸았어.”
“네?”
“너무 피곤해서 잠깐 졸았다고.”
“물 속에서 어떻게 졸 수가 있어요? 숨을 못 쉬는데.”
“...... 나는 그럴 수 있어. 쓸데없이 연습을 너무 많이 시켜. 게다가 왜 자꾸 팔을 쓰라고 하는 건지.”
그가 근육이 갈라진 팔뚝을 툭툭 치며 한숨을 쉬었다.
“허어…… 그럼, 그냥 내 마음대로 수영하겠다고 해요.”
“나도 그렇게 말했어. 그랬더니 안 된대. 수업 들어오지 말래. 수업 시간에만 수영장을 쓸 수 있으니까 안 들어갈 수도 없고. 아, 피곤해.”
분명히 한국어를 하고 있는데, 인아는 당최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늘 그와 대화를 나누면 뭔가 이상한 게 느껴지는데, 뭐가 이상한지, 뭐라고 질문을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그래서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인아 역시 담담하게 말했다.
“앞으로는 물속에서 졸지 마요. 나, 진짜 깜짝 놀랐단 말예요.”
그러자 그가 그윽한 눈길로 인아를 보며 물었다.
“나 죽은 줄 알고 살려주려고 물에 뛰어든 거야? 수영도 못하면서?”
“나 수영할 줄 알거든요? 어렸을 때 배웠어요. 생존 수영. 그동안 연습을 안 해서 좀 잊어버려서 그렇지.”
“생존 수영이 뭐야?”
“살려고 배우는 수영이라는 뜻이예요.”
“잘못 배웠어. 너 그렇게 수영하다간 죽어.”
그의 말이 너무 단호해서 인아는 뭐라고 반박도 못하고 쩝하고 혀를 찼다. 그때 밥과 밑반찬, 된장찌개와 윤기가 좔좔 흐르는 생선이 나왔다.
“오, 물고기.”
전에는 구운 물고기는 정말 별로였다. 그러나 인간들은 횟집에 가지 않는 이상 집에서는 생선은 불에 구워서 먹는다고 하였다.
그래도 영 마뜩치 않았는데, 오늘은 배가 고파서 그런가 구운 생선이 정말 맛있어 보였다.
포크는 따로 주지 않는 것 같아 라티아나는 젓가락 두개를 모아 생선을 퍽 찍어서 역시나 머리부터 오드득 오드득 씹어 먹기 시작했다.
이미 요상하게 먹는 모습을 몇 번 본 탓에 인아는 신경쓰지 않고 된장찌개를 덜어 밥을 말았다. 틀림없이 날이 더웠는데, 물에 흠뻑 젖었다가 나와서 그런가 으슬으슬 몸이 떨렸다.
빨리 따뜻한 걸 먹고 몸을 녹여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갑자기 라티아나가 생선을 내려놓고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왜요?”
밥을 떠 우물거리던 인아가 그의 시선에 손으로 입을 가리고 물었다.
“더워?”
“왜요?”
“얼굴이 빨개.”
“아, 감기 기운이 올라오는 것 같아서 그래요.”
“감기?”
갑자기 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러나 인아는 담담하게 다시 밥을 뜨며 말했다.
“아까 물에 빠졌다가 머리 제대로 안 말리고 나와서 그런 것 같아요. 얼른 먹고 가면 돼요.”
“병원에 가야 하지 않아?”
어쩐지 떨리는 그의 목소리에 인아가 국그릇에서 눈을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감기 정도에 무슨 병원엘 가요? 잘 먹고 잘 자면 나아요.”
“약 먹어야지!”
갑자기 그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인아가 깜짝 놀라 주변 테이블을 돌아보다가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갑자기 왜 소리는 지르고 그래요?”
“빨리 먹어. 먹고 병원 가자.”
라티아나가 갑자기 생선을 우적우적 씹었다. 그 모습이 어딘가 공포스러워 인아는 얼른 시선을 내리고 말했다.
“지금 병원 문 다 닫았어요.”
“큰 병원 ER로 가.”
ER이 뭔지 몰라 잠시 머뭇거리던 인아는 얼른 응급실의 약자임을 기억하고 서둘러 말했다.
“겨우 감기 기운으로 응급실 가면 욕 먹어요.”
“그래도 가. 너, 잘못하면 죽어.”
농담이 아니었다. 마뮤인이 육지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제일 많이 죽은 원인이 바로 감기였다. 인간의 바이러스는 생각보다 치명적이었다.
지금은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 예방약, 치료약도 만들어 치사율이 거의 제로에 가까워졌지만, 그래도 초창기에 워낙 많은 마뮤인이 죽었던 탓에 그들은 육지인의 바이러스를 본능적으로 두려워했다.
그러나 이런 사정을 모르는 인아 입장에서는 그의 과잉 반응이 이해가 안 갈 뿐이었다.
“감기로 안 죽어요. 들어가다가 약 사먹으면 돼요.”
어차피 비상약 정도는 마련해 놓아야 하니까, 인아는 어딘가 겁먹은 것처럼 보이는 그를 안심시키기 위해 말했다.
본인인 한 말대로 잘 먹고 잘 자기 위해 열심히 한 그릇을 비운 인아와는 달리 라티아나는 생선 한 마리만 먹고 식사를 끝냈다. 예전에 열 마리를 해치웠던 걸 본 탓에 인아는 그의 눈치를 할끔 보았다.
가게 근처 약국에 들어가 그가 보는 앞에서 종합감기약까지 살뜰하게 까먹은 인아는 지하철 역 앞에서 그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지하철 타고 가면 되죠? 나는 여기 버스 있어서 버스 타고 가면 돼요.”
내내 그녀의 가방을 대신 메고 있던 라티아나에게서 인아가 가방을 뺏으며 말하자, 그가 몸을 돌려 가방을 못 가져가게 하며 말했다.
“데려다줄게.”
“괜찮아요.”
“너네 집이랑 우리 집 가까워. 데려다줄게.”
그가 고집스럽게 말했지만, 인아는 고개를 갸웃하며 대꾸했다.
“응? 우리 집 알아요? 내가 전에 말했었나?”
“...... 어.”
사실은 전에 살아봐서 아는 거였지만, 그 말을 할 수는 없어 라티아나는 적당히 대답했다. 그러나 인아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그쪽 집 모르는데?”
그녀의 말이 끝나자 라티아나가 그녀의 앞을 갑자기 가로막으며 말했다.
“우리집 갈래?”
“으응?”
이건 또 웬 급발진인가 싶어 인아가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내가 그쪽 집을 왜 가요?”
“우리집에 약 있어. 주사도 있고.”
약까지는 그러려니 하겠는데, 주사까지 있다는 말에 부모님이 의사신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녀는 이성을 차리고 야무지게 말했다.
“그래도 시간도 늦었는데 낯선 남자 집에 가는 게 말이 돼요?
“우리집 보고 싶다며?”
“내, 내가? 내가 언제요?”
한국말을 못 알아들어도 유분수지, 왜 이야기가 그렇게 튀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라티아나는 그녀의 황당한 표정과는 상관없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너는 우리집 모른다고 아쉬워 했잖아. 오늘 내가 알려줄게. 같이 가자.”
“됐거든요? 시간도 늦었는데, 집에 부모님 안 계세요?”
“친구만 있어. 그런데 그 친구보고 들어오지 말라고 하면 안 들어와.”
그러나 오늘은 애니말라보고 나가지 말고 있으라고 해야 할 판이었다. 그녀를 치료해야 하니까.
반면 인아는 친구 보고는 들어오지 말라고 하고 대체 무슨 짓을 하려고 그러나 해서 경계의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외국인들은 인사도 키스로 하고 성적으로도 개방되어 있다더니 그 말이 사실인가 싶었다.
오늘 이 남자는 너무나 개방적이었다. 유교 국가에서 나고 자란 자기와는 너무나 달리.
하지만, 선이 분명한 얼굴에 초롱초롱한 눈 때문인지 인아는 그가 문란해보이기 보다는 이 얼굴에 당연한 건가 하는 엉뚱한 생각도 들었다.
미친 거 아냐?
인아는 다시금 이성을 붙들어매고는 냉정하게 말했다.
“집에 초청해주는 건 고마운데, 나중에요. 오늘은 너무 늦었어. 그리고 감기 걸렸을 때는 일찍 자야 해요.”
“아……”
갑자기 귀가 축 늘어진 강아지를 연상시키는 그의 표정에 인아는 도대체 자기가 지금 어느 세상에 살고 있는 건지 감이 잘 오지 않았다.
첫 만남부터 이 남자는 인아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첫눈에 반했나? 아니, 첫눈에 반했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눈치를 보지 않고 들이댈 수가 있나.
황당하기 그지 없는 그의 모든 행동을 외국인이라 그런 거다라고 치부해 버리기에도 그는 너무나 저돌적이었다.
문득 이 남자의 이런 행동에 대해 효진과 상의를 해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재현 선배와 연애를 오래 했으니, 남자의 심리에 대해 좀 알지 않을까.
굳이 버스 정류장까지 따라와서 차에 탄 그녀에게 손까지 흔드는 그를 보며 인아는 다시 한번 효진에게 상담을 좀 해봐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다음날, 인아는 효진과 상담을 하기는 커녕 아예 학교에 가지도 못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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